2024. 8. 2. 19:07ㆍ미스터리
에베레스트를 첫 번째로 정복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공식적으로는 1953년 영국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인류 최초로 세계 최고봉 정상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이전에,
정말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사람이 없었을까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지 맬러리,
한 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사망한 그는
영국군 출신 산악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왜 산에 오르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기에 있기 때문에”
라고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고,
훗날 그의 한 마디는 명언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엄홍길 대장님의 말씀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그의 등반 파트너, 앤드류 어빈
그 역시 베테랑 산악인이었죠
1924년, 둘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둘은 정상에서 약 800피트(240m)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고
그 후로 누구도 그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12시 50분
갑자기 대기가 맑아졌고, 에베레스트 정상의 능선 전체와 마지막 봉우리가 드러났다.
내 시선은 능선의 바위 계단 아래 작은 눈 꼭대기에
실루엣으로 나타난 작은 검은 반점에 고정되었고,
곧 검은 반점이 움직였다.
또 다른 검은 반점이 나타나
눈 위로 올라가 능선에서 다른 반점과 합류한 뒤
두 반점은 능선 바위 계단에 접근하여
곧 정상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내 모든 것이 다시 한번 구름에 휩싸였고
설명은 하나뿐이다,
맬러리와 어빈이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먼 거리에서도 상당한 민첩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노엘 오델, 지원 등반가이자 맬러리와 어빈을 본 마지막 목격자
1924년 6월 8일
정상으로 올라간다던 그들이
다음날이 돼서도 캠프로 돌아오지 않자
그제야 오델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해발 8,200m에 설치된 7번째 캠프를 발견했지만...
맬러리와 어빈이 가져간 천막만이
강한 바람에 찢긴 채로 휘날리고 있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6월 10일,
다시 한번 몇몇 멤버들이 캠프를 찾아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맬러리와 어빈의 산소통에 들어간 공기는 소진되고
가져간 식량은 떨어진 지 오래일 시간이었으므로
둘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해
결국 나머지 팀원들은 모두 철수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1924년 10월 17일
영국 세인트폴 성당에서 총리와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두 사람의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1975년,
중국인 산악인의 에베레스트 시신 목격담을 토대로
1980년대부터 맬러리의 시신을 찾기 위한
등정대가 조직되었고,
마침내 1999년 5월 1일,
조지 맬러리 시신 수습 작업 등정대는
에베레스트 북동릉 8,138m 지점 약 30도 경사진 곳에서
앞으로 넘어진 채 숨진 모습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앵커는 시신의 옷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싸인 편지를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그가 조지 맬러리란 걸 알 수 있었죠
이는 즉시 영국 BBC의 특종으로 보도되었고,
전 세계에서 모자이크 처리 없는 그의 시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에베레스트는
매우 특수한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75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시신은 비교적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피부가 마네킹처럼 하얗게 탈색된 이유는
오랜 세월 강한 직사광선에 노출된 탓이라고 하네요
한쪽 다리는 부러져서 뼈가 노출된 상태였는데,
이는 사망 후에 부러진 게 아니라
살아있을 때 사고를 당했음이 밝혀졌고,
그가 모종의 이유로 심각한 골절을 입어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조지 맬러리의 시신
*유튜브에 당시 수습대원들이 찍은 영상이 있습니다.*
영상으로도 한 번 봐보세요!
대원들은 조지 맬러리를 감고 있던 로프를 제거한 후
주머니에서 고글과 나이프, 가위, 성냥, 양철캔, 장갑, 보겔손목시계, 고도계, 등산화 등을 회수했습니다.
싹 다 털어갔네요
그리고 주변의 흙과 돌을 모아 시신을 덮었습니다.
발견 후 바로 무덤을 만들었기에
현재는 시신을 볼 수가 없고 비석들만 확인할 수가 있겠네요
그런데 왜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을까요?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니,
높은 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시체는
수백 킬로그램이 넘게 무거워진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곳에서 시신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 보입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는 곳곳에 방치된 시신들로도 유명하죠
사망한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시체들은
일종의 이정표로 사용되며,
몇십 년 동안 에베레스트 방문자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모두가 궁금해했던 카메라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맬러리와 어빈은 카메라를 챙겨갔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등정에 성공했다면,
분명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품이죠
일각에선, 맬러리가 리더였고 어빈이 보조였기에,
카메라는 어빈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해요
하지만 어빈의 시신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좀 전에,
손수건에 싸여 주머니에 숨겨져 있던
세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고 했죠?
2024년 올해 그 장대한 탐험 100주년을 맞아,
편지들이 이제 공개되었습니다!
맬러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이었기에
이전에는 일반인이 쉽게 열람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게 되었네요
하지만 진짜 감동은 글 자체에 있기에
마지막 편지의 끝 부분을 조금 가져왔습니다.
촛불이 꺼져가고 있으니 이만 줄일게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게
- 이 소식을 듣기 전에 너의 불안이 끝나기를 -
곧 최고의 소식이 갈 거야.
성공 확률은 50대 1로 불리하지만,
난 그만큼 자랑스러워
너에게 큰 사랑을. 항상 사랑해,
-조지
앞으로의 도전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희망이 번갈아 느껴지네요
1953년 4월 29일,
영국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진을 남기고 무사히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이들이 과연 최초 등정자가 맞는지,
아니면 맬러리와 어빈이 먼저 올랐는지가
뜨거운 화젯거리가 됐었죠
기억하시나요?
두 사람의 마지막 목격자였던 오델이 말하길,
이 둘은 틀림없이 등정했으며 내려오던 길에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델은 1987년 만 97살까지 살면서 1924년의 등정대원 중가장 오래 살았는데,
죽을 때까지도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해요
문제의 카메라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조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바인의
마지막 발걸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0년 전 그날,
맬러리와 어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상,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미스터리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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