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미제사건

90년 전 토막살인마 [영구미제사건]

Mr. I.II 2024. 8. 9. 14:46


*모자이크 없는 시신 사진 주의*




때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세계는 대공황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생활양상이 변화했고,
전국에 판잣집 마을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중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도 예외는 아니었죠

1930년대 클리블랜드는
지금의 디트로이트처럼 황량하고 위험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클리블랜드의 가난한 동네들은
그들만의 판잣집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중에서도,
킹스베리 런 동네만큼 위험한 곳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술집, 도박장, 매춘업소가 즐비해 있는 곳이었죠


The Cleveland Torso Murderer


1934년부터 시작하여 이곳에서는
4년 동안 잔혹한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은 클리블랜드 토막 살인사건이라고 불립니다

사건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시죠






1934년 9월 5일


브래테날 동쪽의 에리호 기슭,
토막 난 여성의 몸통이 하나 떠밀려옵니다.


허벅지는 붙어 있지만 무릎은 절단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수색에서 다른 신체 부위가 일부 발견되었으나
머리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죠

30대로 추정된 신원 미상의 시신은
’호수의 여인‘ 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자궁 적출술로 인한 복부 흉터가 있었으나,
당시에 이는 비교적 흔한 일이어서
이것만으로 신원을 특정하기엔 어려웠다고 해요

그리고 피부에 석회염화물로 추정되는
화학 물질이 묻어 있었습니다.

살인범은 화학약품을 사용하여
시체를 더 빨리 분해시키려 했으나
실수로 시체를 보존할 석회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그녀는 공식적인 피해자 목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끔찍한 사건은
클리블랜드 주민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곧 토막 난 신체 부위가 도처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935년 9월 23일

잭애스 힐의 가파른 경사지를 달려 내려가던 두 소년은
머리가 없는 시체를 마주쳤습니다.


이스트 49번가 언덕 기슭의 협곡에서 발견된 시체는


29세의 남성 에드워드 앤서니 안드라시의 것으로 밝혀졌고,
약 2~3일 전 사망한 것으로 보였죠


안드라시의 머리는 나머지 몸 근처에 묻힌 채 발견되었는데,
부검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손목에 밧줄 자국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참수, 출혈 및 쇼크였습니다

부검 결과 참수 직전, 그는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검시관들은 약 9m 떨어진 곳에서
두 번째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신원 미상의 40대 남성으로 추정됐고,

두 사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참수되고, 거세되었죠

그라고 첫 번째 피살자와 같이
화학 방부제 처리가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 살인범을
’킹스베리 런의 도살자‘ 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36년 1월 24일


클리블랜드의 이스트 20번가에서
네 번째 토막시신이 발견됩니다.

사체는 사지가 절단되어 종이로 싸인 채
바구니에 담겨 있었습니다.


토막 난 사체의 주인은
44세의 플로렌스 제네비브 폴리요로 밝혀졌고,
부검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의 사망 원인 또한
참수였다고 합니다.

사후 만들어진 데스 마스크





1936년 6월 5일


어깨에 낚싯대를 메고 하이킹을 하던 두 소년이
버려진 갈색 바지 한 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주머니 속 동전을 바라며 바지를 발로 찼지만
굴러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머리였죠


다음날, 철도 검사관 두 명이
참수된 남성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대담하게도 니켈 플레이트 로드
경찰서 건물 앞에 유기되어 있었습니다.


땅에는 피가 없었는데, 이 사실로
그가 다른 곳에서 살해되고 유기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었죠

부검 보고서에는 시체에서 피가 빠져나갔고,
머리는 경추 사이에서 잘려 있었으며
피살자의 몸에서 약물이나 알코올의 증거는 없었고,
살해되기 전에 고문을 당하거나
결박된 흔적 또한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시신에는 문신이 여섯 개나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Tattooed Man‘(문신한 남자)’ 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참고로 어떤 목격자는 같은 날 오후 11시경에
최신형 캐딜락이 범죄 현장 근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던데..

사후 만들어진 데스 마스크


당시 경찰은 시신의 절단된 머리를 석고로 본 따
누군가가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대중에게 공개했으나,
끝끝내 그가 누군지는 밝혀낼 수 없었답니다.






1936년 7월 22일


같은 해 7월, 17세 소녀가 철도 선로 근처에서
‘갈색의 썩은 덩어리‘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또 다른 머리 없는 시체였습니다.


심하게 부패한 40대 백인 남성은
클리블랜드 서쪽 지역에 있는
노숙자 캠프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피살자의 생식기는 날카롭게 잘려
1인치 길이의 흔적만 남아있었다고 해요

병리학자는 남자의 몸 아래
땅으로 스며든 대량의 마른 피를 발견했는데,
이는 그가 그 장소에서 살해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경찰은 그 지역을 철저히 수색하여
그 남자의 머리를 발견했지만
당시에는 이미 백골화가 진행되어 있었죠



또한, 피 묻은 옷이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긴 머리칼과 낡은 옷차림, 노숙자 캠프라는 위치로
그가 근처 철도 선로를 타고 클리블랜드를 드나드는
수많은 부랑자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러나 신원 파악에는 실패했습니다.







한 해 동안 6건의 잔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나,
경찰은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클리블랜드의 신문사는 거의 매일
살인 사건과 용의자 부재에 대한 기사를 찍어내고 있었죠

엘리엇 네스(왼쪽, 쿠야호가 카운티 검사 프랭크 T. 컬리탄과 함께 사진 촬영)


이 시점.. 적잖은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한 수사당국은
해당 사건을 엘리엇 네스라는 법 집행관이
담당하도록 명령했고,
그렇게 본격적인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I want to see this psycho get caught.’
이 사이코가 잡히는 걸 직접 보고 싶다.

엘리엇 네스 Eliot Ness (1903 - 1957)






1936년 9월 10일


한 노숙자가 동쪽으로 가는 화물열차를 기다리던 중,
이스트 37번가 근처의
웅덩이에 떠 있는 남성의 몸통을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신속하게 수색을 진행했고,
상체의 하반신과 두 다리의 일부를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피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 묻은 펠트 모자를 발견했으며
개울가에서 신문지에 싸여 피로 물든
파란색 작업복도 발견되었습니다.

소방대원들은 아예 개울의 물을 퍼내
절단된 머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머리는 발견되지 않았고,
신원도 확인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시신 수색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구경꾼의 수는
60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살인범도 그중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죠?


피해자는 20대 후반으로 추정되었고,
이번에도 역시 사망 원인은 참수였습니다.

검시관 피어스가 말하길,
신체 절단면에 주저 흔적이 없다는 것은
범인이 인체 해부학에 매우 익숙하고
자신감 있는 전문가일 것이라 추정했습니다.







1937년 2월 23일


156번가의 유클리드 해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0대 여성 피살자의
상체가 떠밀려 온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떠밀려온 몸통의 하반신이 발견되었죠

목과 머리도 경추와 흉추 사이에서 분리되었으며
피부 표면에 여러 개의 칼자국이 있었습니다.

검시관의 사건 파일에서도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이 여성 또한 머리가 발견되지 않아 신원 확인이 불가했죠






1937년 6월 5일


여덟 번째 희생자는
로레인-카네기 다리 아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1936년 부 신문과 함께
썩은 삼베 자루에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약 1년 전에 사망한 여성의 유해 일부였습니다.


그녀는 40세의 매춘부 로즈 월러스로,
폴리요가 있었던 같은 술집에서
실종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로즈 월러스는 1936년 8월 21일,
10개월 전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녀가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때
이미 1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만큼 연고자가 적은 피해자를 골랐다는 거죠






1937년 7월 6일


닭 사료용 삼베 자루에 싸인
남자의 몸통 위쪽 부분과 두 허벅지
킹스버리 런 바로 아래
쿠야호가 강에 떠 있는 채 발견되었습니다.


복부 내장과 심장은 뜯겨 있었다고 합니다.
이전의 범행방식과는 다른
약간의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죠
더욱 잔인해졌습니다.

피살자는 30대 중반에서 후반이었고,
그 또한 머리가 없어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38년 4월 8일


일하러 가던 한 노동자가 카야호가 강둑에서
죽은 물고기의 사체를 목격했고,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절단된 사람의 다리였죠

그렇게 열 번째 시신의 일부가 발견됩니다.

한 달 후인 5월 2일
경찰은 여성의 반으로 잘린 몸통과 허벅지,
나머지 두 다리가 들어 있는 삼베 자루 두 개를
강에서 꺼냈습니다.


부검결과, 그녀는 클리블랜드의 피살자 중
유일하게 체내에서 약물이 검출되었습니다.

약물은 범죄에 사용되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녀는 마약 중독자였을까요?

팔을 발견했다면 답이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끝내 팔은 찾지 못했고,
그녀 또한 신원미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1938년 8월 16일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9번가 끝에 있는 매립지에서 금속 조각을 찾던 남자들이
절단된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여성의 시체는 걸레, 갈색 종이, 골판지 등에 싸여 있었고,
이례적으로 머리와 손이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같은 날,
또 다른 남성의 시신이
클리블랜드 호숫가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마찬가지로 머리가 시신에서 잘려 나갔기에
희생자의 신원을 밝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두 시체는 수사 담당자인 엘리엇 네스의 사무실 창문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범인은 마치 경찰을 조롱하는 듯했죠



초조함을 느낀 엘리엇 네스는 이틀 후,
35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수사라는 명목으로
킹스베리 런의 노숙자 캠프를 급습했고,
판잣집에 불을 지르고
모두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당시 언론은 이러한 강압적 수사 방식이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비판했죠



그리고 이듬해 1939년 7월,
카운티 보안관 마틴 오도넬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52세의 벽돌공 프랭크 돌레잘을 체포했습니다.


이후의 조사에서 그는 피살자인 에드워드 안드라시와
로즈 월러스를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수 시간의 심문 후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고 해요


위 사진 속 장소는 센트럴 애비뉴 1908번지의 욕조입니다.
용의자 프랭크 돌레잘이 피해자 플로렌스 폴리로의
시신을 토막 냈다고 자백한 곳이죠

하지만 그의 진술은 너무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자칭 사건의 진범임에도 불구하고
횡설수설하며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했죠


그러나 프랭크 돌레잘은 재판을 받기 전,
쿠야호가 카운티 교도소에서
갈고리에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바닥에서 불과 1.7m 높이의 고리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그의 키가 172cm였음에도 말이죠

또한, 부검 결과 돌레잘은 갈비뼈 중
여섯 개가 골절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모두 구금 중에 발생한 부상이었어요



사실상 프랭크 돌레잘이 진범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누군가의 외압을 받아
거짓자백을 했을 거라 믿고 있어요

돌레잘의 죽음은 정말 자살이었을까요?



Francis Edward Sweeney (1894 - 1964)


또 다른 주요 용의자였던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위니 박사

그는 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로,
현장에서 절단 수술을 실시한
의료 부대에 속해 있었다고 해요
그는 야전 의사로서 많은 절단술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많이 의심스럽죠?


아무튼, 제대 후에도 트라우마로 인한 병적인 불안과
우울증으로 인해 극심하게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 그는
1934년 아내와 이혼까지 했었죠

네스 또한 이런 스위니를 강력하게 의심했고,
심문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두 번의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서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두 테스트 모두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인
레너드 킬러가 실시했는데,
그는 스위니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말했다고 해요

그러나
심증만 있을 뿐, 확실한 물증이 없었습니다.

또한 스위니는 당시 클리블랜드의
마틴 의원과 친척 관계였고,
조사 보안관과도 연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빽이 있었던 그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겠죠.

경찰이 그를 용의자로 지목할 수 있는 단서나
연결고리가 더 이상 없기도 했고요

결국 스위니는 기소되지 않은 채로
몇 년 뒤 알코올 문제로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습니다.


스위니는 수감된 후에도 네스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괴롭힘을 지속했고

끝내 1964년 7월 9일
오하이오주 데이튼의 재향군인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1954년, 스위니가 엘리엇 네스에게 보낸 엽서(5장 중 2장)


저명한 법 집행관 엘리엇 네스가 주도한
대규모 조사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의 엽기적인 살인 사건은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공식적인 살인 건수는 12건이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건 이상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발견되지 못한 시신들도 많을 테니까요.


혹시 블랙달리아 사건 아시나요?
워낙 유명한 미제 사건이기에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1947년에 일어난 이 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일 거라 보는 견해도 많았습니다.

시기가 살짝 어긋나긴 했지만…
잔인한 살해 방식이 유사했기 때문이죠

살인범은 늘 희생자의 머리를 베고 사지를 절단했으며,
가끔은 몸통을 반으로 절단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일부 희생자는 신체에
화학 처리가 되었고,
이로 인해 피부가 붉고 질긴 가죽처럼 훼손됐습니다.


법의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이러한 요소들은 수사를
더욱 난항으로 빠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건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대공황 속 저소득층이었고
범인에게는 아주 쉬운 먹잇감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난 이후로 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공식 경찰 기록은
분실, 파기되었다고 해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살인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은 누가 가장 의심스럽나요?




이상, 미국의 영구미제사건
클래블랜드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